모자·마스크로 얼굴 감춘 이기영,결국 여론의 도마에 오른 흉악범 피의자신상공개 제도

2023. 1. 5. 17:17정치,국제,사회,경제,시사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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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얼굴 감춘 살인 피의자 이기영
“현행 신상공개 제도 개선해라” 여론 일어
피의자 동의 없이는 실제 얼굴 공개 못해
‘머그샷’ 촬영 허용한 피의자는 극소수
“신분증 사진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송언석 의원, “30일 이내 얼굴 공개” 개정안 발의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4일 오전 검찰에 송치되면서 일산동부경찰서 포토라인에 섰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패딩 점퍼 후드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려서다. 지난해 12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했을 때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렸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이기영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 사진은 빛바랜 운전면허증에 붙어있는 오래 전 사진이었다.

그의 실제 얼굴을 아는 이들이 들고 일어섰다. 경찰이 내놓은 사진이 실제와 너무나 다르다며 여론은 자백 안한 여죄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현재 얼굴이 공개돼야 한다는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온라인에서는 “머그샷을 찍어서 공개해라”, “얼굴을 다 드러내게 해서 포토라인에 세워라”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들은 그의 실제 모습과 동영상을 찾아내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다.
◇여론의 질타 받는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문제점

경찰은 현재 강력범죄와 성범죄 피의자에 한해 심의를 거쳐 얼굴,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찍은 어떤 사진을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머그샷’(구금 과정에서 수의를 입은 상태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공개할 수 있다. 거부하면 피의자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학생증 등 신분증 증명사진으로 공개한다.

이기영은 머그샷 공개를 거부해 운전면허증 사진이 공개됐다.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처벌법과 성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심의를 거쳐 △잔인성 및 중대 피해 여부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에 한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문제는 신분증 사진은 세월이 지난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를 수 있고 이미지 보정 작업을 많이 하므로 실물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또 포토라인에 선 흉악범들이 마스크 등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도 벗으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이기영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권유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해 피의자 전주환이나 ‘n번방’ 주범 조주빈, 문형욱의 신상이 공개됐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전주환도 경찰이 공개한 증명사진 속 얼굴과 포토라인에 섰을 당시 얼굴이 많이 달랐다.

그 전에도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 노원 세 모녀 살해 피의자 김태현,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 범인 허민우 등도 경찰이 공개한 신분증 사진과 실제 모습이 크게 달랐다.

2010년 4월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총 44명이다. 이 중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하는 걸 허용한 범인은 2021년 서울 송파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 등 극소수다.

그 전에는 검찰 송치 단계에서 얼굴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2019년 전 남편 살해 용의자 고유정이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목적은 재범 방지, 범죄 예방, 다른 범죄 신고 받기, 국민의 알 권리 등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피의자 동의 없이는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할 수 없고, 피의자가 포토라인에서 얼굴을 가려도 제재하지 못한다면 신상공개 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의 일반 법 감정은 흉악범이나 성범죄자에 대해 엄중하다. 특히 피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한다. 흉악범죄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는데 가해자 인권만 중요하냐는 비판이다. 만천하에 얼굴을 공개해서 다시는 그런 범죄를 할 수 없게 만들고 다른 여죄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 개정 움직임

국회가 이런 국민감정에 부응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4일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공개 시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 사진을 사용토록 하는 관련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관련 법률을 발의했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때에는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해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안 의원은 “실효성 없는 신상공개로 오히려 무분별한 신상 털기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강력범 신상공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국은 우리보다 신상공개에 적극적

인권 문제에 민감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마저 흉악범 신상공개에 대해서만은 우리보다 적극적이다. 특히 미국, 일본 등은 적극적이다.

미국은 정보자유법에 따라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정보로 규정하고 범죄 종류나 피의자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공개할 수 있다. 다만 공익과 프라이버시권 간의 비교 형량에 따라 법원이 공개를 불허하는 경우도 있다. 주마다 조금씩 규정도 다르다. 일부 주는 인권 침해 논란 등으로 머그샷 공개를 제한하기도 한다.

비교적 경미한 범죄 피의자의 머그샷도 공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대 초반이던 1977년 무면허 난폭 운전으로 경찰에 체포됐을 때 머그샷이 공개됐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적극적 신상공개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수사당국이 피의자 인권만 강조하다보니 일반적 국민감정과 크게 동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흉악범의 동의가 없더라도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해야만 신상공개 제도의 취지와 실효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신상공개 대상을 엄격하게 선별하자는 것이다.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피의자 신상을 적극 공개하는 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머그샷을 공개하면 범죄자라는 인상을 확정해 준다는 것이다. 현재 성범죄자의 경우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후에 공개되고 있다. 또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나면 그동안 당한 명예훼손이나 인권침해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법무부의 유권해석도 현재는 이쪽이다.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신상공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권보호와 범죄예방 사이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게 일단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련 법안이 상정되면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최정훈의 조은가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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