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삼성 209조원 사상 최대 유동자산 있어도… 1조도 못썼다

2021. 7. 22. 15:43정치,국제,사회,경제,시사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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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에 선 삼성 ◆

삼성전자 유동자산 총액이 올해 209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리더십 공백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막대한 자금력에도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5세대(5G) 이동통신과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세계 경쟁 격화 속에 '복합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20일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유동자산 총액은 1분기 말 기준 209조16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198조2200억원)에 비해 10조9400억원이 늘었다. 유동자산은 기업이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합계치를 말한다.

반도체 업계의 전 세계 경쟁이 격해지면서 인텔이 300억달러(약 34조원)에 글로벌파운드리 인수에 나서는 등 경쟁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삼성전자는 2016년 미국 차량용 전자장비 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뒤 1조원 이상의 대규모 M&A는 실종됐다.

국정농단 사건, 삼성물산 합병 의혹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연이어 터진 시점과 일치한다. 2019년에는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기업 NXP 인수도 검토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 부회장이 올해 1월 국정농단 재판에서 실형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되면서 삼성의 시스템반도체 투자도 멈춰 섰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의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 증설안은 세부 사항을 정해두고도 최종 결재 도장을 못 찍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버라이즌과 8조원 규모의 역대급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기세를 올렸던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부회장은 "반도체 투자, M&A 등 큰돈이 드는 사안은 기업을 책임지는 누군가가 결정해야 한다"며 "최고 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의 의사결정 동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하루빨리 이 부회장이 복귀해 안정적으로 삼성을 끌어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이날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했다.

투자 멈춰버린 삼성…반도체 이어 스마트폰·5G장비도 경고등


리더십 공백 '초격차' 흔들

시가총액 대비 현금성 자산
세계 주요 IT기업 중 최대

스마트폰 상반기 출하량
올해 목표치 절반도 못채워

공들였던 버라이즌 통신장비
에릭슨이 삼성 따돌리고 수주

"장기적 투자 대명사였는데…
총수없어 단기수익에만 치중"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최근 스웨덴 통신 장비 기업 에릭슨과 83억달러(약 9조5000억원) 규모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8조원어치 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던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도 전력을 다해 매달렸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삼성전자는 앞서 올해 초에는 미국 T모바일과 AT&T의 5G 장비 수주전에서도 에릭슨·노키아에 밀리며 수주에 실패했다.

20일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버라이즌 수주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와의 인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이 부회장은 버라이즌 외에도 독일 도이치텔레콤, 인도 릴라이언스, 일본 NTT도코모·KDDI 등 통신업계 최고경영진과 직접 만나 수주에 공을 들여왔는데 그가 올 초에 재수감되면서 에릭슨 등 기존 강자들에게 다시 밀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부회장이 올해 1월 국정농단 재판에서 실형 확정 판결을 받고 내년 7월 만기로 수감되면서 삼성전자는 다방면에 걸쳐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마저 시들시들해지며 매출 200조원대, 영업이익 50조원대인 삼성전자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기준 사상 최대인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 가능한 자산) 약 209조1500억원을 쌓아 올렸지만 인수·합병(M&A), 설비투자, 연구개발(R&D) 등 무엇 하나 최종 결재가 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시가총액(7월 19일 531조원) 대비 24.7%에 이르는 1144억달러(약 131조원)를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 중이다. 현금 비중이 5~10%에 불과한 애플·인텔·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에 비해 좀처럼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1분기 삼성전자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13.2% 점유율로 에릭슨(24.6%)과 핀란드 노키아(15.8%)를 압박하고 있었다. 세계 1위인 중국 화웨이(점유율 35.7%)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가해지며 통신업계는 삼성전자가 빈틈을 노려 성장세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에 이르러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7%대로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버라이즌 계약 탈락 등 대규모 수주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제2의 반도체'인 전기차(EV) 배터리 분야에서도 삼성SDI는 빅2(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앞다퉈 대규모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있는 빅2와 달리 삼성SDI는 이렇다 할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일 BMW와 1조원대 북미 공장 합작설이 나오지만 아직 결정 여부는 미지수다. 삼성은 주력 사업의 흔들림도 심각한 지경이다. 스마트폰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약 1억3400만대로 올해 연간 목표치(2억8000만대)의 절반도 못 채웠다. 삼성전자는 2017년 상반기에 스마트폰 출하량이 1억6000만대(연간 3억2000만대)로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명운을 건 시스템 반도체 대전에서도 소외됐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선언을 통해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대만의 TSMC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수감된 뒤 이는 청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가 수감 전 착공한 평택3캠퍼스만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133조원 대신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올해 5월 계획을 수정했지만 170억달러짜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증설안은 4개월째 '검토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의 차세대 기술인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파운드리 공정은 개발이 지연돼 당초 일정보다 2년 늦은 2024년께 양산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많다.

이 사이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 회사들은 착착 움직이고 있다. TSMC는 올해 280억달러, 2024년까지 총 1280억달러를 파운드리 설비 투자에 쏟아붓는다고 올 초 선언했다. 360억달러 규모의 2나노급 미국 애리조나주 신공장도 작년 말 착공했다. 3나노 기술 상용화 일정도 내년으로 앞당기고 애플과 인텔이 벌써 3나노 반도체 고객사로 낙점돼 시제품을 만드는 중이다.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의 인텔도 200억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기로 했다. 300억달러를 들여 세계 4위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도 도전한다. 이 밖에 인텔은 독일과 벨기에·네덜란드 등 서유럽권에 200억유로(약 27조1000억원)짜리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방안을 두고 유럽연합(EU)과 보조금을 협상 중이다. 인텔은 장기적으로 이 공장에 총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D램·낸드플래시)와 스마트폰 이후의 새로운 먹거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시스템 반도체 등 신사업을 성공시키려면 과감한 설비 투자와 글로벌 M&A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아직 국내 기업 환경은 각 계열사 CEO가 결정권자보다는 실질적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역할을 수행한다"며 "오너 경영인이 주도권을 쥐고 신성장 동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들의 사법 리스크가 발생하면 그룹 전체가 멈춰 선다. 기업도 장기적으로 경영환경을 바꿔야 하지만 현재의 삼성은 과다한 사법리스크에 경영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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