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베일 벗은 워터게이트 '딥스로트'의 정체

2023. 8. 16. 07:45정치,국제,사회,경제,시사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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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시크릿 맨' 번역 출간

베트남 전쟁 중인 1970년 초 머리칼을 바짝 자르고 미국 해군 제복을 입은 27세 청년이 백악관 집무동 웨스트윙 대기실에서 키가 훤칠한 은발의 중년 남성을 마주했다.

무료한 군 생활에 지쳐 백악관 방문을 일종의 나들이로 생각하던 청년이 예의를 갖춰 자신의 성명과 계급(중위)을 밝히자 한참 동안 주변을 경계하던 남성이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마크 펠트입니다."

약 2년 뒤 워싱턴D.C.의 한 사무실에 불법 침입한 혐의로 남성 5명이 체포되면서 미 정계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기자와 취재원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ADVERTISEMENT

체포된 이들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비밀공작반이었다.

이 사건의 정치적 함의는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닉슨은 큰 어려움 없이 재선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배후에 닉슨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졌고 각종 추문이 이어졌다.

닉슨은 결국 1974년 8월 상원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자신 사임했다.

1970년 당시 국방부 메시지나 밀봉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백악관을 드나들던 해군 중위는 후일 워싱턴포스트 초년 기자로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밥 우드워드다.

마크 펠트(1913∼2008)는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에 도움을 준 정보원이다. 사건 당시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던 그는 '딥스로트'(Deep Throat)라는 별명으로 지칭됐다.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기자와 취재원이라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대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던 우드워드는 엉뚱하게도 처음 만난 펠트에게 진로 상담을 한다. 펠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젊은 장교를 대하고 FBI 사무실 직통번호도 알려준다. 실제로 펠트는 우드워드의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우드워드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주간지에서 일한다.

이후에도 펠트와 우드워드는 멘토와 멘티, 혹은 친구와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우드워드가 1971년 9월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한 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는 역사를 바꾸는 특종 보도라는 결실을 낳는다.

딥스로트의 정체는 오랜 기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많은 이들이 취재원이 누군지 밝히려고 시도했다. 여러 매체가 딥스로트를 추정하는 기사를 실었고, 헛다리를 짚은 책을 쓴 이들도 있었다.

우드워드는 철저하게 함구했다.

사건 발생 33년이 지난 2005년 펠트의 법률 대리인이 연예 전문지 배니티페어에 정보를 제공한 것을 계기로 펠트가 정보원이라는 것이 비로소 공식화했다.

밥 우드워드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시크릿 맨'에서 워터게이트 추문 취재 과정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펠트는 자신의 신원을 절대 밝히지 말라고 요구했고, 우드워드와의 접촉은 말 그대로 첩보전이었다.

이들은 긴급한 만남이 필요한 경우 빨간 헝겊으로 만든 깃발을 빈 화분에 꽂아서 발코니 뒤쪽에 놓는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펠트는 자가용 대신 택시를 타고, 호텔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내린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역시 목적지와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내려서 걸어오라고 우드워드에게 미행을 피하는 요령을 알려준다.

펠트는 우드워드의 집에 배달되는 뉴욕타임스(NYT) 20페이지에 동그라미를 치고 시곗바늘을 그려 약속 시간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는 지하 주차장에서 우드워드를 만나 보도에 도움을 주지만 어떤 경우에도 출처를 밝히지 못하도록 '딥 백그라운드'를 조건으로 한다.

심지어 펠트가 FBI에서 은퇴한 뒤 우드워드가 신원을 밝혀도 되겠느냐고 묻자 펠트는 불같이 화를 냈다.

시간이 흘러 2000년 우드워드는 펠트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펠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기억을 대부분 상실한 상태였고 그의 딸 조안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자가 미국 정치사를 뒤흔든 사건의 취재원이 FBI의 2인자였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드워드의 견해였다.

우드워드는 오랜 기간 딥스로트의 신원이 밝혀지는 날이 오느냐는 질문을 반복해 받았다. 그는 당사자가 신원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그가 사망한 후에나 공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펠트가 치매에 걸리면서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고 딥스로트의 공개는 더욱 늦춰졌다.

딥스로트는 2005년 베니티페어의 보도를 계기로 워싱턴포스트와 우드워드 등이 비밀 유지 의무에서 해방되면서 마침내 확인된다.

최정훈의 조은가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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